D#02 나의 욕망 탐색하기
최근 '욕망'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다. 워낙 요즘 이름 있는 스타트업이 투자금을 몇 천 억 단위로 받고있고, 그러한 투자금 중 꽤 많은 비율이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직무 구인에 집중되고 있는탓에 구인 전쟁이 따로 없다. 올해에는 25살 개발자 청년이 억대 연봉에 억대 사이닝 보너스를 제안 받았다는 소식이 너무 흔해서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서 오늘도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의아한 마음도 든다. 왜 저들은 서류 통과만해도 애플워치를 주고, 붙기만 하면 연봉을 1.5배로 만들어준다는데 플링크에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로사. 로사의 욕망은 뭐에요?"
매일 아침 9시 30분이면 커피 마시는 사람들은 4층에 자연스레 모여서 커피를 내리며 이런 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난 주 하루는 로사와 나만 커피를 마시게 되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질문을 툭 던졌다. 뜬금없는 질문에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는 명문 고등학교 출신답게 로사는 본인의 40대에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거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로사의 경험 속 어떤 결핍 혹은 어떤 요소들이 그러한 욕망을 만들어냈는지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의외의 답변을 듣고나니 새삼스레 OKR을 정하면서 해외에 상장하는 회사가 되자는 목표를 정했을 때 로사 눈이 왜 그렇게 반짝 반짝 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공동 창업자간에도 이러한 욕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초기에 나의 설득으로 이 회사에 들어와서 2~3년 째 고생하고 있는 디렉터들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보지 않았던 이유는 서로 얼굴을 보며 본인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몰입되다보니 자꾸 팀원들의 욕망에 대해서 묻게되고, 듣다보니 그렇게까지 내가 감당하지 못할정도의 욕망을 나에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보니 용기를 내서 자꾸 물어보게 됐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로사 뿐 아니라,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갖는 '타이틀'을 얻어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자랑스럽고 싶은 욕망, 수 천 억대의 회사의 초기 멤버로서 커리어를 예쁘게 만들어가고 싶은 욕망, 한강이 보이는 트리마제에서 살고 싶은 욕망 등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욕망이 섞여있는 조직에서 나는 일하고 있었다.
대표로서 일을 하다보면 팀원간 이러한 욕망의 조율 속 내가 지금 당장 충족시켜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굉장한 무기력감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일을 시작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재서술하자면 '내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자고 이러한 인내를 난 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질에 대한 욕망
주로 창업 초기에 갖고 있었던 욕망이다. 창업 전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수 백 억 수준의 투자금, 수 천 억 수준의 엑싯 사례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주입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직장 생활을 통해 기대되는 뻔한 급여, 그로인해 자연스레 예측되는 평생 소득 금액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창업으로 여겨진다. 창업이란 결국 부의 추월차선 그 자체이며, 내 주변에서 가장 마음이 급했던 예비 창업자는 1년 뒤까지 배당금을 지급하는 회사를 만들어놓고 본인은 또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창업의 촉발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제일 큰 것 같다.
초기에는 나랑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다른 회사 밸류가 얼마인지 매우 관심이 갔다. 그리고 투자를 받으면 이번에 인정받은 회사 가치에 지분율을 곱해보는 일을 주기적으로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욕망이 아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희미해진 것 역시 사실이다. 물질에 대해 초월하게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냥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의 가치는 올라갈지라도 그건 그냥 장부의 숫자일뿐 내 삶은 여전히 대학생 때와 비슷하다보니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약간 희미해진 느낌이랄까.
인정받고 싶은 욕망
초기에 투자금으로 조직을 구성해서 정말 몰입하여 서비스를 개발하고 런칭하게 되면 생각보다 내 주변인들 조차도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투자사든, 은행이든, 기술보증이든, 심지어 추석에 만난 친척들에게 우리 팀과 우리 서비스를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시장의 문제가 어떻고, 우리 서비스가 어떤 특징이 있고, 우리 팀이 어떻고 열심히 설명해도 사실 상대는 시큰둥하다. 사무실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팀' 이지만 사무실 문을 열면 회사 이름조차도 두 번 세 번 이야기 해야 사람들이 겨우 받아쓸 수 있다. "쁠링크요? 피피링크요?"
몇 년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투자사는 매 번 회의적인 응답을 하고, 우리 팀에 들어오라고 설득하면서도 네카라쿠배와 비교하는 구직자 앞에서 한 없이 비참해진다. 그냥 우리 팀의 노력이 의미있는 도전이고, 멋있는 도전이라고 인정 받았으면 하는 욕망.
강한 조직에 대한 욕망
요즘 가장 사로잡혀있는 욕망은 이것이며, 한편으론 내 삶 모든 순간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향이 있어서 늘 내 조직을 위한 일을 찾았다. 늘 반장 하는 것을 좋아했고, 주도적으로 조직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내 모든 시간과 자원을 썼다. 그렇게 내가 속한 조직이 강해지면 거기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지 못하는데 내가 그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조직을 떠났다. 그러다보니 결국 창업으로 귀결하게 된 것 같지만.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하여 5년 넘게 분투 노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성장이 복리처럼 쌓여서 회사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주 가끔 특수한 직무 모임에 나가면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아 그 회사 들어봤어요' 라는 이야기를 듣는 오묘한 경험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조직의 의사결정은 비효율적이고, 글로벌 1등 기업에 비하면 우리 조직은 공격 한 번 받으면 금방 깨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있다. 지금까지 애써 일구어놓은 우리의 제품, 우리의 시장이 일시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 개인은 연약하지만, 우리가 속한 조직은 매우 강한 병기여서 조직 내로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일을 능히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 외부의 공격에 대해 방어력도 탁월하여 공격을 받으면 금세 회복하여 오히려 역공을 펼칠 수 있는 자원, 에너지, 조직력을 갈망한다.
내 욕망과 마주하기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내가 속한 조직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충분히' 강한 조직은 없기 때문에 아마 나는 이 직책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계속 고통 받게 될 것이며, 내 욕망에 따라 또 새로운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할 것이다.
그래 내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