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4 1,000배 수익을 올린 10년.
2024년 3월 11일.
창업자 세 명은 9년간 이어오던 동업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마주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셋 중 누군가는 이러한 결말이 꼭 오늘이 아니었어도 결국은 찾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표였지만, 능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무기력감을 느꼈다. 이는 돈의 문제도 아니었고, 성장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냥 2015년부터 차곡 차곡 꾸준히 쌓여갔던, 우리가 만들었냈던 수 많은 작고 큰 결정들이 초래한 오늘이었다. 이러한 오늘은 2016년에도 있었고, 2019년에도 있었고, 2021년에도 찾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운이 좋게도 화해로, 투자로, 때로는 비즈니스 성장으로, 그 오늘을 미래의 오늘로 넘길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2024년의 오늘은 운이 나쁘게도 넘길 수가 없었던 것 뿐이다.
2023년 이후 본격적으로 세일즈 팀을 꾸리고, 글로벌하게 세일즈를 막 시작하려던 입장에서는 큰 시대의 흐름과, 시장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치게 되는 점이 억울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못하는 음식점 사장처럼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을 못하는 대표였기에 무기력하게 모든 미래를 강제적으로 청산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억울함과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한 상황 속에 이제는 주말에 출근을 해서 할 일 조차 없었던 어느 일요일, 문득 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던 곳이 떠올랐다.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 나는 분당에서 수학 강사로서 꽤나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학원에서 잘 배워서 분점을 내거나 혹은 당시 세종시나 나주시처럼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는 신도시에 입시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부모 상담, 학생 관리에 최선을 다 했고, 학원 행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5년 2월 우연히 지금 회사의 창업자를 만나게 되면서 오늘까지 약 10년을 창업한 회사에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짧지만 약 20개월 정도의 소프트웨어 창업을 한 후 폐업을 하고 강사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경험이 너무 힘들었기에 다시는 창업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 마음을 바꾸었고 새로운 창업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 당시 강사였던 나는 왜 마음을 바꾸었을까 생각 해 보게 되었다.
나의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다시 창업하여 성취하고 싶었을까? 나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이 긴 여정의 시작점이었던 곳. 당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거닐던 거리를 다시 걸으면서 10년 전 나와 조우했다.
당시 나는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그냥 지방에 있는 학생과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 연결 해 주고 수수료 받는 '온라인 학원 비즈니스'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당시에 대학에서 졸업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주변에 과외 하고 싶어하는 선생님을 많이 알고 있었고, 공동창업자들은 지방에서 과외를 받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한 3년 열심히하면 금방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학원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세련된 학원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이 창업 과정은 길었고, 더 오래 걸렸고, 더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10년은 더 도전적이었고 더 재미있었고 더 보람있었다.
감히 억울함과 원망함을 이야기 하기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너무 많은 것을 얻은 염치없는 10년이었다. (물론 체중도 30kg+를 얻었다.)
투자를 받으면서 자본 시장에 대해서 배웠고, 팀을 조직해서 협업을 하면서 조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다. 보상과 평가를 만들면서 개인의 욕망을 이해했고, 서비스를 팔면서 고객과 시장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하는지 배웠다.
코로나 전후 상황을 겪으면서 시장과 금리의 무서움을 배웠고, 사임을 준비하면서 투자계약서의 무게감을 배웠다. 업무를 종료하면서 유종의 미가 얼마나 큰 인내를 필요로하는지 깨달았고, 동업을 종료하면서 결혼과 이혼의 무게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글로벌 세일즈를 진행하면서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고 글로벌 시장의 거대함을 몸소 체험했다. 파트너십을 추진하면서 정말 삶에 열정적이고 실력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세상이 정말 넓고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체감했다.
매일 매일 내 생각과 가치를 설득하고, 또 도전을 받으면 다시 재반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에 대해서 나도 정말 많이 알게 되었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10년간 묵묵히 서포트 해 준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사업하며 유난히 예민하게 구는 내 주변에 여전히 남아준 오랜 친구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정말 다시 하면 이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살짝 들었던 것도 사실이나, 금새 교만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10년은 내가 배워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초심자의 운이 좋았던 것이었을 뿐.
이렇게 처음 창업할 때 고작 333만원 자본금을 넣고 시작했지만, 누적 35억 원 쯤 매출을 내며 개인적으론 금전적인 수익은 없었지만 값진 경험으로 더 큰 수익률을 낸 페이지콜 창업의 큰 단락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