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6 페달링

D#06 페달링
Photo by Jukan Tateisi / Unsplash

2017년 2월의 어느 날, 교대역 근처의 폴 바셋 카페.

나는 당시 화상과외 서비스를 운영한 지 1년 정도 지나고 있었다.

과외를 하고 싶어하는 선생님은 학교 게시판을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돈을 지출하면서 과외를 받을 학생을 찾는 것은 서비스를 오픈하고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려운 주제였다. [당시 이야기 보러가기]

그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서비스는 과외를 구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매칭해주는 서비스나 인터넷 카페들이었다. 물론 그런 서비스들도 마치 데이팅앱처럼 학생이 한 명 구인글을 올리면 수 십 명의 선생님들이 경쟁해야하는 수준으로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과외를 구하려는 학생들이 전국에서 가입을 하고 있었기에 내 입장에서는 참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업체들도 학생과 선생님들의 연락처 그 자체가 그들의 비즈니스 핵심이어서 쉽사리 다른 업체와 협업을 하려고 하지 않기도 했고, 또 개인의 연락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다보니 비용을 지출하고 거래하는 것이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과외 중개 플랫폼에서 직접 페이지콜을 연동하여 온라인으로 과외 하려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그들 플랫폼 내에서 과외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몇 업체들에 연락을 해서 이런 제안을 해 봤지만, 대부분 과외 중개 업체들은 팀 내에 개발자는 없고 운영 업무 팀원만 아주 소수 근무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IT스타트업의 부흥과 함께 과외 중개 플랫폼도 혁신을 만들어 보겠다던 팀들이 몇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페달링이었다.

과외중개 페달링 서비스

페달링 팀은 과외와 관련된 숙제 관리, 과외비 결제 등 다양한 기능을 끊임없이 추가하며 과외를 하려는 학생과 선생님을 모으는 팀이었다.

나는 이러한 새로운 스타트업들과 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묘한 경쟁심리가 있어서 온라인으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꾸준하게 지켜보았지만 별도로 연락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른 스타트업을 하고 있던 대학 동기인 A가 연락을 해왔다.

"형, 혹시 페달링 팀을 만나본 적 있어요? 최근에 제가 아는 엄청 뛰어난 엔지니어가 거기서 일을 한다고 해서 알게 된 팀인데요, 형네 서비스랑 접점이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A의 주선으로 나는 페달링 팀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온라인으로만 몰래 지켜보던 팀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상대가 우리 서비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서 긴장도 되었다.

A가 이야기 하기를, 페달링 팀은 울산에서 창업했는데, 대표님이 한 달에 몇 번 서울에 올라오니 시간 맞춰서 만나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고선 시간을 정해서 만났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교대역 폴바셋

밖에서 훤히 안이 보이는 교대역 폴바셋 창가 자리에 한 남자가 맥북을 켜놓고 부지런히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IT 창업가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공대선 대표님이시죠?"

정면으로 보니, 똘똘함으로 뭉쳐진듯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공대선 대표와의 첫 만남이었다.

페달링 시절 공대선 대표

같은 시대에, 비슷한 나이에, IT스타트업에 도전한다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어색함 없이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는 본래 정보나 데이터에 대해서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고, 그러다보니 회사 소개서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었다. 너무 극 초기의 회사이다보니 우리의 방향성과 생각이 알려지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매출이나 팀원 숫자 등도 마치 내 성적표같아서 남들이 아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대선 대표는 나를 만나는 첫 자리에서 바로 페달링 투자제안서를 열고 나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너무 열심히 나에게 페달링의 목표와 현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줬다.

IT스타트업다운 깔끔하게 디자인된 한 장 한 장의 장표, 그리고 꽤나 오랜시간 도전 해 오고 있었던 기록들, 이미 미국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사실, 심지어 미국에 팀원들과 합숙을 하며 진출 노력을 했었다고?

"대표님 우리 같이 잘 되어보시죠 으하하하"

한참 본인 회사를 소개하고나서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썩 밉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파트너십도, 공동 마케팅도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그냥 오묘한 '대표'라는 동료애를 느끼고 서로 헤어졌다.


2017년 5월,

2월에 처음 인사하고서 우리 둘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나는 2017년 4월에 인큐베이터 프라이머에서 투자를 막 받았고, [당시 이야기 보러가기] TIPS 지원까지 힘겹게 마쳤다. 그리고선 본격적으로 사업 성장에 대한 고민이 많던중, 공대선 대표를 소개한 A대표는 나에게 함께 울산에 있는 페달링 사무실에 한 번 휴가겸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을 이용하여 토~일 울산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A대표와 함께 울산역에 내리니 조금은 연식이 된 검정색 중형차 한 대를 끌고 공대선 대표가 마중나와 있었다. 그리고서 그 특유의 호탕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울산에 왔으니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며 운전을 했다.

그리고 공대선 대표와 함께 창업한 친구들도 처음으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유니스트에 입주해있던 페달링 사무실

그리고 점심을 근사하게 먹고 도착한 UNIST. 엄청 현대적인 건물 속 페달링 사무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큰 사무실이었는데, 그 사무실은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고3 교실같은 느낌이 들었다. 벽마다 함께 성취하고 싶은 목표들이 붙어있고, 함께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인쇄하여 붙어있었다. 각 자리의 모습은 개인마다 다 개성있게 꾸몄고, 온갖 곳에 페달링 로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실로 그 공간은 정말 매 월 서비스 매출이 성장하여서 다 함께 홋카이도에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열정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사무실 투어를 짧게 하고서는 공대선 대표는 그 다음 스케줄인 대왕암 방문을 해야한다고 재촉했다. UNIST에서 대왕암까지 가는 길은 멀었고, 주말인지라 밀리기까지 했다. 남자 다섯명으로 꽉 찬 차량 내에서는 거의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대선 대표와 페달링 친구들이 처음 창업부터 현재까지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별히 미국 버클리에 넘어가서 집 하나를 빌려서 합숙하며 미국 진출에 도전했던 이야기는 이 팀의 경험과 끈끈함이 정말 남 다르다고 느끼게 했다.

2017년 대왕암에서 페달링 친구들과 함께. 대왕암은 보이지 않는다.

30대가 되어서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서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들은 "스타트업"이라는 주제로 하루만에 친구가 됐다. 다들 직장 생활도 없이 바로 창업을 한 동지들이었고, 또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 런칭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료애를 느꼈다. 우리는 밤 늦게까지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과 경험들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구든 선생님이 될 수 있고, 학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페달링팀과의 짧고도 강한 만남은 이렇게 끝이났다.

난 사실 이후에도 사업을 계속 하면서 그 어떤 팀과도 이렇게 밀도있게 교류를 해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각자의 사무실에 방문해서 1~2시간 티타임을 가지고서는 절대 이런 라포를 형성할 수 없는데, 페달링팀은 '마침' 그들이 울산에서 창업했기에 1박 2일의 티타임을 갖게 되어서 마치 5년은 알고 지낸 것 같은 라포를 단숨에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페달링팀이 2015년 서울이 아닌 울산에서 창업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내 인생에도 영향을 주게 된 마치 나비효과같은 요소였을지 모른다.